장인어른은 감옥 간 사위가 미국으로 유학간 줄 아셨는데... 박카스를 사랑하셨던 장인어른, 구속된 사위 미국유학간 줄 알고 나는 2001년 3월 31일 세 번째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대우자동차에 몰아닥친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강북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이었던 나는 지금의 최고위원 격인 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이었다. 서울권역 선출과정에서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출신의 노동운동 대부 정윤광 민주노총 정치위원장과 오랜 진보정치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진보정치연합 출신 이재영 동지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꺽고 당선됐기 때문에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던 때였다. 김대중 정권 퇴진을 내건 첫 민중대회였다. 외자유치를 위해 정리해고 제도를 사회적으로 관철시켜야 했던 정권으로서는 몹시 민감하게 반응했던 집회였다... 더보기 진보신당 부대표직을 사퇴합니다. 진보신당 부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 지난 6월 26일 진보신당 임시당대회를 마치고 난 다음날 월요일 아침, 저는 진보신당 부대표의 무겁지만 영광스러웠던 책임을 내려 놓았습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여부를 놓고 내홍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양당간의 통합이 한 점 희망도 없는 국민들에게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양당의 통합이 그런 새로운 희망을 풀무질하기 보다는 공학적인 접근과 과거복원의 시각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진보신당의 부대표로서, 진보대통합이 야권전체를 진보적으로 재편하는 대통합의 시작이자,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대한 국민 대행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6.26 당대회는 양당통.. 더보기 공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그 세대들의 스무살의 참혹함과 나의 스무살 공감. - 한국전쟁 발발 6.25 아침에 쓰다. 작년 10월. 진보신당의 부대표로 선출된 다음날. 진보진영의 오랜 관습대로 선출된 대표단 모두는 마석의 전태일열사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주변의 민주열사, 노동열사들의 묘역도 참배했다. 내 발걸음은 20년 전 91년 5월 투쟁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같은 학교 선배 김귀정의 묘 앞에서 멈췄다. 이제는 20년이나 지났으니 가슴의 상처도 아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그때를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는데, 여전히 내가 진보정치의 길을 걷고 있고 우리사회가 어느정도 나아졌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앞에 서서보니 내 마음속 상처는 여전히 새빨간 자상이 뚜렷하고 나.. 더보기 이전 1 ··· 1143 1144 1145 1146 1147 1148 1149 ··· 116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