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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문성근에 답하고, 진보정당에게 호소한다. - 야권통합 주장 "진보"가 선거연대에 머물려는 "진보"에게


문성근에 답하고, 진보에게 호소한다.

- 야권통합 주장하는 “진보”가 선거연대에 머물려는 “진보”에게

박용진(진보신당 전 부대표)

진보정치, 발상전화 필요한 때

문성근 백만민란 대표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무반응이다. 그가 진정성을 담은 호소를 보내왔지만 진보정치세력은 상황의 변화가 어떻든 ‘진보의 독자성’과 ‘삼자정립’(보수-자유-진보, 즉 한나라-민주-진보라는 삼당대립구도를 지칭)이라는 정해진 길을 가고자 할 뿐이다. 이 글은 문성근 대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자, 문성근 대표의 호소에 이어 진보정치가 진보정치 내부를 향해 쓰는 두 번째 호소이다. 나는 진보와 자유주의 세력의 통합정치를 주장하고자 한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가치 중심 정당 창당을 주장하고자 한다. 발상의 전환을 주장하고자 한다.

진보정당의 지난 20년 조직적 목표는 “독자적정치세력화 실현!”이었다. 이를 위해서 대선에서부터 지방 기초의원까지 모두 단독 후보 출마가 기본이었다. 이는 보수우익정치세력과의 대립은 물론 자유주의정치세력과의 분별정립도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목표가 최종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독자적 존재를 바탕으로 다음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독자적정치세력화 = 진보단독집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진보정치세력의 최종 목표는 집권이어야 하며, 그것은 진보정치가 독자적 존재감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하고 노동자에게 다짐했던 정책들의 전사회적 실천과 실현을 의미한다.

진보정치진영이 국민과 노동자에게 약속한 민생복지, 노동존중, 평화번영의 길을 가기 위해 더이상 '큰 목소리로 주장만 하는' 단계를 넘어 '약속을 실천으로 실현시키는 데 힘쏟을' 상황이 되었는데 진보의 독자적 존재감만 계속 지키겠다고, 그것만으로 진보정치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이다. 반성해야 할 벼랑끝에서 다시 무책임의 발길질을 거듭해서는 안된다. 삼자정립을 위해 자유주의 세력과의 ‘대립적 경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절망적 상황과 정치의 사망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은 끔찍하다. 절망적이다.

‘포츈’지 선정, 매출액 기준 세계 500대 기업에 14개 대기업이 들어갔고 작년 발표에 비해 한국기업의 무서운 상승세는 여실히 확인되고 있지만, 한국 노동자와 국민들의 삶의 지표는 더욱 악화되었다. 법과 제도, 정권과 언론은 분명히 대기업과 재벌, 그리고 사회적 강자의 편이며, 이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정의를 약화시키는 각종 조건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옹호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조선말기의 그것과 비슷하다.

불평등과 경제적 어려움 전체 조선 백성의 삶을 짓누르는 가운데, 지주가 소작농과 그 가족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사적처벌을 마음껏 행사했던 것처럼, 사주가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맷값을 지불하는가 하면, 아무런 거림낌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사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행위가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추앙받고 있고 주가상승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제 기능을 정지했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를 바로잡아야 하는 정치는 사실상 죽었다.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의 길을 약속하는 정치인의 말은 그저 말뿐이다. 국민과 노동자들은 한나라당 민주당 거대양당의 말잔치 정치에 절망하고 10년 동안 무능력을 노정해 온 진보정치의 다짐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말만 늘어놓고 세상을 위한 단 1g의 변화도 만들지 못하는 정치는 죽은 정치이고, 이름이 진보정치든, 개혁정치든 우리는 모두 이 죽은 정치의 한 귀퉁이씩을 뜯어먹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 자유정치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의 성과와 한계

일반의 평가와 달리 나는 민주당과 현재의 진보정당은 지난 20년 동안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완수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약속했던 한반도 평화와 통일, 정치적 민주주의, 인권의 신장 등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

진보정당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정치적 시민권을 구축했으며 우리사회가 사회양극화 갈등을 해소하고 복지국가로 나가기 위한 진보적 지향을 보편화 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했다. 민주당은 집권 시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일변도로 우리사회를 몰고 가 엄청난 폐해를 남겼으며, 진보정당은 독자적인 집권의 계획도, 다수파 전략도 없이 사회적 항의자로 존재하면서 주장을 실천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으로 전락했다.

양측은 모두 국민들 앞에 반성해야 한다. 오늘 국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갈등에서 양측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양측의 반성없는 이명박 정부 핑계를 받아줄 국민은 없다.

사회양극화 갈등을 지양하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확대로 나가야 하는 역사적 과제에 무지했던 민주당이나, 한국사회에서 벼락같은 정치적 성과를 거둬 ‘빨치산의 아들’이 ‘국민적 지도자’가 되고, ‘수배받던 노동자’가 노동탄압을 질타하는 입장에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국민들이 원했던 ‘역사적 책임’을 실천하지 못한 진보정당 모두 자기반성의 벼랑 끝에 서야 한다. 역사적 과제에 대한 무지와 역사적 책임에 대한 외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은 각자 이에 대한 격렬한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

민주당에 대해 ‘독심술’이 아닌 ‘정치력’ 발휘할 때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92년 대선에서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을 통해 이념적으로 자기 왼쪽과의 연대를 시도한 이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년 만에 다시 ‘왼쪽과의 연대’를 갈망하고 있다. DJP연대와 정몽준-노무현 단일화 성사라는 두 번의 우회전 끝에 엉뚱한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그것은 집권시절 10년의 우편향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할 수도 있고, ‘신자유주의 오른쪽으로의 길’이 망해버린 상황에서 이제 남은 것은 ‘사회연대와 복지국가의 왼쪽으로의 길’ 밖에 남지 않은 궁색한 처지의 반영일 수도 있다.

정치주체의 진정성도 중요하고, 정치적 신뢰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약속과 권력배분 협상도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에 남은 선택은 진보의 길 밖에 없고, 이 길에 서겠다고 하는 한 진보정치세력에게 민주당의 좌향좌는 진성성 여부를 묻는 ‘독심술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전술을 고민하는 ‘정치의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적 과제가 일치한다면, 진보와 개혁의 작은 담장을 넘어서야 한다.

‘전투적조합주의’의 전노협 사수론을 넘어 ‘민주노조총단결’의 기치를 들었기에 민주노총의 건설이 가능했던 것처럼, 11년 전 NL과 PD라는 화해불가능 한 것으로 보였던 운동권정파 논리를 넘어섰기 때문에 당시 진보정치의 조직적 과제였던 민주노동당 건설이 가능했던 것처럼, 오늘날 진보와 개혁이라는 통합불가능 것으로 보이는 두 진영의 통합이 현시기 진보정치의 실천적 과제인 가치와 의제의 현실화, 복지국가 건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달팽이의 인내’로 주류질서를 전복해 나갈 주체 필요

이명박 정권은 국민과 노동자의 절망으로 세상의 다른 것을 쌓아 가는 정권이다.

노동자의 한숨소리가 만든 대기업의 성장세가 이명박 정권의 업적이며, 헌법이 명령하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포퓰리즘을 부르짖는 기득권세력의 당당함 역시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 온 거대한 성곽이다.

이 정권이 이름만 다른 정권으로 연장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난세대와 지금 세대가 극복하고자 했던 불평등과 부조리한 사회를 더욱 강화시켜 다음세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절망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다.

절망을 다음세대에 물려주지 않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을 만들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승의 구도를 필사적으로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의 엄중함을 공감한다면,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식의 자세는 용납할 수 없는 태도이다. 단순 정권교체의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사회의 흐름을 바꿔야 하고 모든 분야에서의 주류교체에 나서야 한다.

87년 이후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전진시켜 내는데 24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한 세대가 흘러간 것이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이 전면화 된 6.2 지방선거를 하나의 역사적 계기로 삼는다면 앞으로 우리사회를 복지국가로 만들어가기 위한 전 사회적 주류질서의 교체로 가기 위해서는 또 한세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분야든 사회적인 분야든 지루하다싶은 끈질긴 인내가 필요하고 시대를 역류하고 싶어 하는 세력들보다 장기적 비전과 태도를 지녀야만 이길 수 있다.

한 번의 공세는 하룻밤의 희열을 가져다 줄 수는 있어도 시대를 바꿔낼 수는 없지만,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끈질긴 저강도 전진은 희열을 맛보기 어려워도 시대를 바꾸고 인간의 운명을 달리 만들 수 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세력, 이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을 구축하고 시대변화를 원하는 사회 곳곳의 세력들의 전투를 지휘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정당이다. 당당하게 ‘지금 당장! 30년짜리 거대한 변화의 시작을 해 나가자!’고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방향을 제시해 나갈 정치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

‘후보단일화’ 전술이 아니라,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통합정당’이 정답

직선제가 민주국가 건설의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듯이 무상시리즈가 복지국가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와 불평등에 맞서 싸우는 노력이 전개되었고 정치영역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했듯이 이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장도에 복지국가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30년 한세대가 고스란히 소요되는 일이다. 그것은 정당이어야 한다.

정당이 아니라 선거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익집단이어서는 안된다. 이익이 맞으면 함께하고 수지타산이 안맞으면 헤어지는 연합정치는 당장의 이익을 구할 수는 있어도 30년 목적을 수행하는 전략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것은 상술이지, 정치가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단지 선거에서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지향해야 할 사회를 만들고 구축해 나가는 길을 가겠다면 ‘후보단일화’나 ‘선거연대’가 아닌 ‘통합정당’의 건설이 정답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주류들은 선거연합으로 앞서 이야기한 목적달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보단일화’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 선거연합만으로는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실현해 낼 수 없다. 선거연합 당사자인 후보와 정당들 사이에 지루한 갈등구조를 유발함으로써 당장의 승리를 장담하기도 어렵거니와 역사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일관되게 추진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장 내년 총선에서 ‘호남과 관료 기득권 중심의 민주당’을 온존시킨 채 후보단일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과정도 수월치 않을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게다가 후보단일화의 최대 동력이 될 ‘반MB'의 깃발을 가장 높이 들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씨가 될 것이다. 현재도 최대의 ’반MB' 정치인이고 가장 강력한 현 정권 견제세력이다. 내년 총선을 사실상 진두지휘 할 박근혜 씨가 반MB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야권의 반MB 선거연합은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미래 비전을 놓고 대결해야 하는데 단일정당이 아닌 선거연합으로 미래비전을 내놓을 수 없거니와, 과거평가를 놓고 공격하자니 공격의 선수를 상대에게 선점당할 처지인 것이다.

사실상 단순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나,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장기과제를 위해서나 ‘(선거)연대가 아닌 통합(정당)’이 정답인 것이다.

진보와 자유주의, 하나의 정당은 불가능한 상상인가?

우리는 진보교육감의 존재와 탄생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정당공천배제라는 법적 테두리안에서 진보정당과 민주당,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의 선거캠페인을 펼쳐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이명박 정권의 속도전 정책에 가장 의미있는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진보정당들과 민주당 양쪽에서 바라볼 때 각각 부족하고 미흡한 면이 있겠지만 6명의 진보교육감은 하나씩 하나씩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일제고사와 고교선택제 등 교육을 정글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을 걷어내고 있다.

느리지만 확고한 변화! 이것이 진보이다.

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들은 거리에서 공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그 주장에 적극적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조응한 정치세력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진보정치세력이 운동에 머물고 있을 때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정치공간을 통해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여 시대적 과제를 받아 안은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제2의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선거를 통해 의지를 표출하는 길이 막혀있던 87년 6월 항쟁 당시처럼 거리와 공장에서의 집단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는 각종 투표현상을 통해 이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진보가 여기에 조응하는 정치세력을 만들고 자신의 적극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으면 진보정치는 정치민주화 과정에서처럼, 주장은 외치지만 과제 실현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두 번째 쓰라림을 맛봐야 한다. 두 번의 실패는 사실상의 도태와 소멸의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정치의 위기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동거라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존재이유에 충실하지 못한 내부에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진영은 세력의 크기를 견주고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시대 과제의 실천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국민들이 전개하고 있는 제2 민주화 운동,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분립과 독자성 유지의 대상이었고 경쟁과 투쟁의 대상이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과제 실천을 위한 정치 재편의 장으로 끌어들어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가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 가치 중심의 질서 재편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여 다수파 정치세력 형성의 주도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보정치세력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진보정치, 소극적 태도 벗어나면 역사의 주인공 될 수 있어.

정당이 사회변혁을 위한 결사체라고 하는 낡은 도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정당안에는 여러갈래의 입장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발전의 측면에서도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하는 것은 그 정당과 그 사회의 불행이다.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정파든 분파든, 계파든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 정당이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철학, 하나의 실천만 해야한다면 이미 대한민국에는 사안마다 생겨나는 갈등과 노선으로 인해 방방곡곡마다 당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정당으로 넘쳐났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기본을 지켜나간다면 결이 다르고, 철학이 달라도 목적을 하나로 하고 이를 그때마다 조금씩 수행해 나가면서 변화시켜 갈 수 있다. 다만 목적이 다르다고 판단되면 함께 당을 할 수 없다. 그 목적이 당이 강령으로 국민들에게 큰 틀로 약속하고 각 선거마다 공약과 정책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과 자유주의정치세력이 지난 20년 간 반목하고 경쟁하는 관계였지만 시대과제의 실현이라는 목표에 동의한다면 나는 과감하게 그 20년 반목과 경쟁의 관계를 청산하거나 하나의 틀 안에서의 경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감하고 단호한 인식전환과 노선전환이 양쪽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오로지 시대과제와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진보-개혁 통합정당”의 전제들

첫째, 복지국가 건설이 목표.

한국사회를 정치적 제도적 민주의의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발전시키겠다는 목적에의 합의가 대전제이다. 그것은 민주주의 완성을 의미하고,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기에 보여주었던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의 오류를 시정하겠다는 다짐이다. 병영국가에서 국민국가로 이행했고, 이제 국민국가에서 정상국가로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둘째, 노동존중사회 건설을 위한 구체적 대안의 합의이다.

복지국가 건설로 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이 행복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고 지금 보여지는 반노동적 법률과 제도는 시급히 개정되고 폐지되어야 한다.

이미 민주당이 여러 과정을 통해 이야기 한 비정규직 양산 법안의 개정과 최저임금현실화(노동자평균 임금의 50%) 법제화 등을 내년 19대 원 구성 이후 3개월 이내 입법발의 하겠다는 입장을 내걸어야 한다. 또한 헌법적 권리인 노동조합의 존재를 부정하는 손배소 등 온갖 부당한 제재방식에 대한 법적 금지 , 정리해고 사유에 대한 엄격한 법적 규정 등 노동보호조치가 선행되어야 하다.

또한 노동조합을 사회운영의 공식적인 주체로 존중하기 위한 신개념 노사정 대화틀을 가져야 하고, 이 공간에서의 합의를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노사가 대립과 갈등의 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을 확고히 해야 한다.

셋째, 선거제도의 획기적 변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

지금의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중심의 제도로는 우리 정치사회의 지형을 제대로 바꿀 수 없다. 일단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의회구성비율에 반영되지 않아 민심왜곡 국회가 성립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소수정치세력의 진출보장, 다양한 정치적 견해의 공존을 위해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완전한 도입이 필요하고, 국회 다수당이 되고 정권을 교체하게 되면 차기 총선 2년 전에 국민투표를 발의해서라도 선거제도의 변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전제해야 한다.

넷째, 공동의 당 운영을 위한 소수파 존중제도가 당내 민주주의 작동원리로 자리 잡혀야 한다.

이미 여러 공간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정파등록제’와 ‘준원내교섭단체운영권’ 인정 등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치세력들이 공존하는 당 운영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당 운영원리가 당헌 당규에 규정되고, 모든 구성원들에게 창당정신으로까지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정치, 민중에게 10년을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민주당 등 자유주의 정치세력과의 연합성격 정당 건설은 절대 불가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잘 안다. 불가의 이유는 나 혼자라도 100개를 댈 수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겪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정권 밑에서 두 번의 옥살이를 2년 넘게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과의 연합정당을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과감한 역사적 결단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고, 정권교체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주류흐름을 전복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노동자와 국민들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북유럽 나라들에서 태어나지 않고 경쟁만능의 각박한 사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국가의 역할과 사회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노동존중의 복지국가’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의 두 번째 운명은 우리가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최종목표는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자!’던 구호는 다름 아닌 우리 운명에 대한 도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100가지 불가론’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결혼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뒤 결혼하자고 하는 것은 사랑고백이 아니라 상대를 혼란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다. 게다가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면서 사랑을 고백했던 진보정당에게 그 10년은 이미 지났다. 그런데 분당했던 두 당을 다시 합치는 것을 징표로 삼아, ‘언젠가는 이루게 될’ 진보정권 수립의 그날을 기다리고 지지해 달라고 또 한번 이야기 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하 폭정에 짓눌려 있는 국민들에게 너무나 잔인한 사랑고백일 뿐이다.

진보의 존재를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독자적인 정치적시민권을 확보한 지금 다음 단계로 넘어가 진보의 가치와 주장을 실천하고 실현시켜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진보는 ‘과감한 생략과 발칙한 상상력’이라고 한다. 시대를 읽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치세력이 이제 단호한 결단을 통해 또 한번 시대를 선도하고 국민들에게 지금 당장 1g의 변화, 1mm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노동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내는데 진보정치가 지난 10년처럼 헌신한다면 진보의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