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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공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그 세대들의 스무살의 참혹함과 나의 스무살


공감.

- 한국전쟁 발발 6.25 아침에 쓰다.

작년 10월. 진보신당의 부대표로 선출된 다음날.
진보진영의 오랜 관습대로 선출된 대표단 모두는 마석의 전태일열사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주변의 민주열사, 노동열사들의 묘역도 참배했다. 내 발걸음은 20년 전 91년 5월 투쟁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같은 학교 선배 김귀정의 묘 앞에서 멈췄다. 이제는 20년이나 지났으니 가슴의 상처도 아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그때를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는데, 여전히 내가 진보정치의 길을 걷고 있고 우리사회가 어느정도 나아졌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앞에 서서보니 내 마음속 상처는 여전히 새빨간 자상이 뚜렷하고 나는 20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난 5월, 91년 5월 항쟁 20주년 기념 토론회에 갔을 때였다. 지금은 시민운동, 노동운동, 진보운동, 학술운동 등으로 나뉘어져 활약하고 있는 각계의 91년 5월 거리의 주역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마주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확인했다. 모두들 말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그 기억을 떠올리고 말을 나눠야 하는 자리를 불편해했다. 개인의 상처도, 집단의 상처도, 그것을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단순히 역사로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를 더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그리고 참전용사들이다.

그들도 나처럼 스무살 혹은 더 어린 열여덟의 어린나이에, 왜 그래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당황스런 상황으로 내몰려 총을 들고 상대를 겨눠야 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살육의 현장에서, 같이 밥을 나누고 잠자리를 서로 지켜줬던 친구가 누군지 모를 적의 총탄에 죽어가는 모습을 울부짖으며 봤을 것이다. 그들의 상처가 50년이 지난들, 60년이 지난들 잊혀졌을리 없다. 내 상처가 20년이 지나도 이렇게 시퍼런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들을 보수 우익이라 손가락질 했었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체제의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구태, 낡은 기득권 질서를 떠받치는 답답한 존재로 서슴없이 규탄했었다. 그러나 나의 손가락질과 규탄에는 ‘공감’이 없었다.

그들이 안고 있는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픔을 나누기엔 내가 너무 어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상처를 공감하고 그들의 상처를 동원하고 이용하는 여전히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내게는 없었다.

그들은 내가 항거했던 민정당 군부정권의 후예들인 한나라당을 내 평생 결코 지지할지 않는 것처럼, 수백만의 살육의 원흉으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정권과 비슷해 보이기만 해도, 혹은 북 정권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만 해도, 그 세력과 정당을 적대시 할 것이다. 그들이 진보세력을 쉽게 “빨갱이”라 낙인 찍는데에는 이런 단순논리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이제라도 나와 진보가 이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그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공감”의 자세이다.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의 일곱 살 난 아들이 스무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빠의 스무살을 이해하고 그 시절 목숨을 던져야 했던 꽃다운 벗들의 심정과 나의 상처를 알아준다면, 난 그것으로 아들에게 한없이 고마울 것이다. 내가 내 아들에게 바라는 것처럼, 그들도 나와 우리 세대, 진보세력에게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불가피하게 가져야 할 갈등의 무게에서 불필요한 덩어리를 덜어내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한 걸음 진보임이 틀림없다.

언제든, 나는 나의 공감을 표시하고 말해주기 위해 그들의 곁으로 갈 것이다. 이미 강북구의 보훈단체들과의 친밀감은 높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아닌 ‘세대의 공감, 시대의 공감’을 이야기 하고 싶다.

한국전쟁 발발 61년이 되었다.

스무살의 나이에 느꼈을 전쟁의 참혹함이 이 땅에서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으로 그들과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갈등을 부추기고 언제든 전쟁을 감행하려는 세려들에 의해 우리가 나뉘고 갈등할 것이 아니라, 공감을 바탕으로 화해하고 연대하고, 평화를 지키고 나누는 일.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