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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박용진

박진감 23호 - 야권통합정당 창당이 가시화 되다

 

 

 박용진 위원장, 야권통합연석회의 참석

- 12월 17일, 민주당 혁신과통합 포함 통합신당이 뜬다!

 

박용진 혁신과통합 강북추진위원장은 11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진보 및 시민통합정당 출범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했다. 진보신당의 전 부대표이자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박용진 위원장은 야권통합운동세력인 ‘혁신과통합’의 중앙상임운영위원이면서 진보정당 지도자 중에서 드물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통합정당 운동을 전개해 주목받아 왔다.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정세균, 김진표 등 민주당 최고위원 전원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성근 백만민란대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등 20 여명의 야권과 노동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모인 이 날 연석회의에서는 야권통합정당의 창당을 구체적으로 결정했다.
합의된 D-day는 다음 달 17일.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연석회의 참석자들은 국민참여형 경선으로 지도부를 선출하고, 통합과 혁신의 정신에 걸맞는 국회의원 공천과정을 밟아 나가기로 했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우선 배려하는 원칙하에 국민참여경선과 배심원제 도입 등 아래로부터의 공천 정신을 발휘하기로 했다.
박용진 위원장은 이날 연석회의에 대해 “진보민주세력이 하나로 뭉쳐 내년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다짐과 구체적 정치일정 내놓은 것이 큰 의미”라며 “강북구에서도 진보정치세력, 시민운동세력, 민주당 등 모든 야당이 힘을 모으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칫솔

한겨레21 - must have 기고

*이 글은 한겨레21 must have 코너에 실릴 예정입니다. 미리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먼 길 동행하는 칫솔
1997년 대선이 처참하게 끝난 이후 모두가 진보정당 건설을 외면했다.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만이 진보정당 건설에 앞장설 각오를 밝히고 있었다. 겨우 15명 안팎의 사람들만 그의 주변에 남았다. 사람은 없고 할 일은 많은 탓에 나에게는 언론부장, 조직부장, 학생사업단장, 청년실업운동본부 상황실장, 기획부장, 대표 수행비서 등 온갖 직책이 맡겨졌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고 진보정당 건설을 호소했다. 총학생회 생활방에서 자기도 하고, 낡은 하숙방, 남의 집 문간방에서 자기도 했다. 숙박비가 없어 여관에서 자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당연히 칫솔은 내 고단한 진보정당 건설 여정을 묵묵히 증거하며 내 출장 가방안에 늘 있어야 했다.

- 내 자리를 증거하는 칫솔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하면서 진보정당의 첫 원내 대변인으로 시작한 대변인 노릇을 2007년 12월 대선 때 까지 수행했다. 나를 임명할 때의 지도부는 이른바 평등파 지도부였는데, 중간에 자주파 지도부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평등파인 내가 대변인 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자 언론사업의 공백을 우려한 자주파 측에서 계속 역할을 맡아 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대신 대변인 책상에 있던 다른 물품을 모두 치웠다. 언제든 책상위에 쌓인 논평자료나 회의자료 정도만 정리하면 떠날 수 있도록 신변정리를 해 둔 것이다. 대신 책상 속 칫솔 하나는 남겨 두었다. 낡은 칫솔 하나가 내가 현재 대변인실에 거소를 두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의 각오를 표현하고 있었다.


- 감옥과 군대, 고단한 곳에서 만나는 칫솔
94년 서울지하철의 총파업, 98년 정리해고 반대 노동자대회,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민중대회 등으로 세 번의 징역생활을 했다. 징역살이 징하게 하면 남들 다 빠지는 군대도 고스란히 다녀왔다. 현역으로 복무했고 특명이 늦게 떨어져 5일이나 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칫솔이 단지 이빨을 닦는데 쓰는 것이 아님을 감옥과 군대에서 배웠다. 칫솔을 갈아 다양한 용품으로 쓰는 빵잽이들의 놀라운 작업능력이나 빨래, 군화 닦기, 침상청소 등에서 칫솔은 늘 쓰이는 물품이었다. 사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전문적으로 청소하기도 하지만 가장 지저분한 화장실 변기도 그 칫솔질로 청소한다. 사람도 칫솔도 어떤 일에 쓰이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 나의 20대와 30대의 초반은 화장실 청소를 맡았던 칫솔처럼 고단하되 묵묵해야 했다.    

내 이빨을 돌봐주는 연신내 함박웃음 치과 모 원장은 늘 내 치아의 건강상태를 칭찬한다. 안 봐도 안다면서 칫솔질을 꾸준히 한 덕이라고 한다. 맞다. 언제나 손 닿는 곳에 내 칫솔이 나를 기다린다.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든 어느 목적에게든 칫솔만큼이나 유용하게 잘 쓰이고 있는지 되묻는다. 혹 시원치않은 칫솔처럼 잇몸이나 아프게 하고 칫솔모가 빠지듯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글을 쓰기 전엔 나의 must have이면서 must have 였는지도 몰랐던 칫솔에게 미안하다. 쏘리~ 숱한 날을 함께 한 나의 칫솔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