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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 대변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다

혼탁해진 대변인업계, 요즘 왜 이러나?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 대변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다

2013년 10월 23일 (수) 17:09:09 박용진 / 민주당 대변인 mediaus@mediaus.co.kr

 



 
▲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의 모습 (뉴스1)



내가 정당의 대변인 업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우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재야 노동계의 대선조직인 “국민승리21”의 언론부장으로 대변인실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니 참 오래된 인연이다. 
 
직접 정당의 대변인을 맡은 건 2004년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의 대변인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대선후보 선대위 대변인 활동까지 했으니 민주노동당에서만 만 3년 넘게 대변인 노릇을 했다. 민주통합당으로 통합하여 2012년 3월 대변인으로 임명되고 1년 7개월을 하고 있으니 대변인으로서는 드물게 경험이 길고 장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변인이라는 업무에 애착도 많고 보람도 많다. 낭만파 기자들이 많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고 다른 당 대변인들과의 추억도 많다.
 
정당 대변인계의 사라진 에티켓 하나
 
그런데 요즘 이른바 ‘대변인업계’에 기본 에티켓이라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사라졌다. 
 
적어도 대변인이 대통령이나 타 당 대표에 대해 언급할 때는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대통령의 경우야 허니문 기간 6개월을 지나고 나면 야당으로서 공방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지만 적어도 상호존중 속에서 대화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상대당 대표에 대한 언급은 일종의 금기시되어 왔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심한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언제든 대화를 해야 하는 정치권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사실상 없어졌다. 
 
나나 민주당 대변인들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발언을 가끔 논평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중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 10월 8일에 있었다. 
 
그날 정기국회 이틀째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의 본회의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있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한 새누리당 대변인단의 논평에 의해 기존의 금기가 무너졌다. 그날 새누리당은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에 대해 무려 4명의 대변인단이 출동해 “운동권 찌라시”, “국론분열”, “외눈박이”, “짜깁기식 개념” 등의 표현을 동원해 맹비난했다. 듣는 민주당 뿐 아니라 기자들, 심지어는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이런 경우는 몹시 드물거니와 국회운영의 한축인 제1야당 원내대표를 이렇게 긁어놓고 무슨 여야상생이고 정쟁중단을 이야기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전날 민주당 대변인실은 그간의 상례를 따라 대변인단 회의를 열어 민주당 보다 하루 앞서 진행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해 비판과 논평을 자제하자고 했었다. 그에 따라 원내대변인 한명의 논평으로 평가를 그쳤다. 그래서 더욱 입맛이 썼다. 
 
막말, 정쟁 상징 아닌 명대변인들
 
대변인은 원래 당의 입장을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대변인은 정쟁과 말싸움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자당의 입장을 잘 전달하려다보니 상대당이 제기한 비판에 대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다고 할 것도 없이 난타전을 주고받기도 한다. 
 
대변인의 정쟁 이미지는 원래 역할 탓에 말싸움이 거친 면도 있겠지만 요즘은 대변인 홍수시대라고 할 만큼 대변인 수가 많은 탓도 있겠다. 
 
당 대변인 1명이 당 대표와 당 전체를 대변하던 시절에 비하면 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이 따로 있고 복수대변인 제도가 도입된 것도 오래된 일이다. 
 
지금 민주당에만 당 대변인이 3명 원내대변인이 2명이고 새누리당은 원내가 3명, 당이 2명이다. 양당 대변인만 해도 10명이나 되는 것이다. 입이 많으니 말싸움도 많아진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변인의 수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정당들마다 대변인을 그저 상대공격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대변인의 상대비판의 수위가 낮으면 당장 지적이 들어오기도 하고 ‘말펀치’가 세지 않은 대변인은 실력이 없다거나 점잖은 표현을 쓰는 대변인은 열의가 없는 것을 평가받기 일쑤다. 정쟁에 앞장서기를 권유받는 자리인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과 tbs 라디오 한 프로에 출연하여 쟁점토론이 아닌 정담 나누는 훈훈한 코너를 마련했다. 대변인이 그저 서로 싸우고 헐뜯는 자리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해서 만든 자리이다. 시작하기는 딱 세 번만 하자고 했다. 서로의 당에서 대변인이 싸우지 않는 만남과 방송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우리 두 대변인의 연속된 만남이 많은 이의 공감을 이루고 대변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도 언젠가는 대변인 역할을 졸업할 때가 오겠지만 멀리 보면 15년이 넘은 대변인 관련업무, 대변인 직함을 갖기 시작한 것은 9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욕심이 하나 있다면 이 역할을 졸업할 즈음에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명대변인들은 거친 언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박희태, 박상천, 박지원, 손학규, 이계진, 이낙연, 우상호 등이 그렇다. 
 
명대변인은 물 같이 흘러 상대를 벨 실력이 있었고 비판당한 상대조차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정하게 만드는 깊이가 있었다. 
 
그 시절을 아는 나는 얼마나 잘 대변인 역할을 실행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해서, 오늘은 그냥 대변인이라는 역할에 대해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