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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 일요일 오후의 브리핑, 윤상현의 천기누설?


민간인 사찰 피해자라던
박근혜 정부의 외통수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 일요일 오후의 브리핑, 윤상현의 천기누설?

2013년 09월 24일 (화) 10:19:01 박용진 / 민주당 대변인 

 

   
▲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부대표는 이 자리에서 "출발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따갑다"며 "제발 좀 일 좀 하라는 추석 민심에 따라 정기국회를 즉시 정상화 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뉴스1)
 
1.
총선을 보름 남겨놓은 지난해 3월 31일 아침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아침 총선 일일점검회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대규모로 자행한 민간인불법사찰의 전모가 밝혀지자 밀어닥치는 연대책임론에 대해 ‘나 역시 피해자’라며 이렇게 말했다. 
 
“저 역시 지난 정권과 현 정권에서 사찰했다는 언론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정부가 불법사찰로 국민을 감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비대위를 꾸려 쇄신과 개혁을 해 나가는 것도 이런 잘못되고 더러운 정치와 단절하겠다는 것이다.” 
 
“잘못되고 더러운 정치!” 
 
이것이 권력 핵심부가 자행한 민간인 불법사찰 행위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고 규정이다. 그런데 뜻밖으로 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검은 그림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자행된 의혹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 의혹을 발설한 사람은 뜻밖으로 친박계의 신성,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 수석부대표이다. 
 
2.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2일 오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간담회를 열어 "채 총장의 혈액형과 모자의 혈액형을 어떻게 알았냐는 의혹이 있는데 지난 6일 조선일보 보도 이후 정상적 방법으로 권한 안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자의 질문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는 이어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전에 기획해 비정상적, 불법적으로 얻은 게 아니다"라며 "대통령령에 보면 대통령 비서실 직제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특별 감찰을 할 수 있다. 특별 감찰에 의해 정당한 방법으로 권한 내에서 보도 이후에 알게 됐다고 한다."며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예를 들어 어른들은 여권을 보면 혈액형이 나와 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해서도 적법한 방법을 썼다. 구체적인 부분은 정보제공자 보호를 위해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여권 언급을 해놓고는 '구체적인 부분은 말할 수 없다'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여권에는 ‘혈액형’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일이 이쯤되면 삼척동자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눈치챌 수 있다. 윤 수석이 말해줄 수 없다고 한 그 누군가가 윤수석에게 '우린 절대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찰을 진행했다'고 보고와 하소연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윤 수석이 이야기한 청와대의 특별 감찰 대상은 공직자들이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인 임모 모자의 경우 청와대의 특별감찰 대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청와대의 감찰에서 공직자 비위 사실에 연관된 민간인의 경우 조사 대상일 될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경우도 본인의 동의를 얻거나 영장을 통한 적법한 방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임모 모자의 동의없이 청와대가 개인신상정보를 취득할 '적법한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상현 수석은 도둑이 제 발 저려 천기를 누설한 형국에 빠져 버렸다. 
 
3. 
윤상현 수석이 일요일 오후 3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그 내용을 전해들은게 3시 40분 정도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을 발설한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어떨결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기 보다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당직자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수석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탐문 결과 윤 수석이 이야기한 청와대가 특별감찰을 통해 합법적으로 민간인의 개인정보를 취득할 방법은 없었다. 이제 맹공을 퍼부을 브리핑을 하면 된다. 그런데도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도대체 윤 수석은 무슨 이유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뭔가 숨겨진 뜻이 있는게 아닐까? 냉큼 반박하면 함정에 빠져드는 건 아닐까? 걱정아닌 걱정을 다독이느라 브리핑은 결국 한시간이 넘은 뒤에야 하게 됐다. 기자들과 내린 결론은 윤 수석의 ‘말실수’이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4. 
민주당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의 사생활이 공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파악될 필요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의 사생활은 그와 그의 가족이 짊어져야 할 영역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의 사생활을 뒷조사해 그것을 정치공작에 이용해 그를 검찰총장에서 몰아냈고, 그 이유가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게다가 이런 짓을 한 주체가 국가권력기관이라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이번 일이 법적 근거 없는 뒷조사와 불법사찰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저지른 이 행위야말로 박 대통령이 “나도 사찰 당했다”며 피해자를 자처했던 “있을 수 없는 일”이자 “잘못되고 더러운 정치”라고 말했던 바로 그 더러운 정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찰당하면 “잘못되고 더러운 정치”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찰을 하면 그것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일이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수석이 있지도 않은 여권에 혈액형이 기재되어 있다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의혹에 대해 옹호하고 물타기를 시도한 이유가 여당의 원내수석이 거짓말로 방어를 해야 할 만큼 청와대의 민간인사찰 및 불법정치공작의 검은 그림자의 존재가 드러나 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는 청와대와 여당까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채동욱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와 윤상현 수석은 대답해야 한다. 
 
   
▲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
청와대가 민간인의 개인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무단으로 얻을 수 있는 그 합법적인 방법이라는 게 무엇이며, 윤상현 의원에게 이 내용을 말해준 사람이 누구이며, 그의 소속이 청와대인지 국정원인지 밝혀야 한다.
 
게다가 이런 은밀한 보고가 새누리당에게 정식으로 보고된 것인지 아니면 친박계인 윤상현 의원에게만 된 것인지도 밝혀져야 할 일이다. 새누리당이 통째로 연루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종의 비선라인이 존재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가로워야 할 추석연휴 마지막 날 일요일 오후의 기자간담회가 ‘합법적인 불법사찰’을 고백한 것인지 ‘윤상현의 천기누설’인지는 모르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대답해야 할 입장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