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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幕前幕後)] 윤창중 조사내용 흘린 청와대, 영악한거냐? 멍청한거냐?







윤창중 조사내용 흘린 청와대, 영악한거냐? 멍청한거냐?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幕前幕後)]
2013년 05월 14일 (화) 15:43:44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

허리냐 엉덩이냐? 노팬티냐 아니냐?

지금 우리 모두는 윤창중이라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가 물귀신 작전의 윤창중에 대한 반격이랍시고 자체 조사한 내용을 은근히 흘리면서 언론의 관심은 “허리냐 엉덩이냐? 노팬티냐 아니냐?”로 쏠렸다. 어쩌면 청와대는 윤창중 개인의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그의 파렴치한 행동을 지탄하는 국민적 열망을 만들어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언론들은 앞다퉈 이런 낯 뜨거운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0일 새벽 날아든 윤창중의 성추행 의혹 속보 이후 대한민국은 온통 윤창중이라는 수렁과 그 안에서 벌이고 있는 “미래와 창조의 청와대 사단” 전우들 사이의 이전투구에 빠져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냉정을 유지한 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책임은 박근혜에게 있다”는 일원론적 정치비평도 아니고, 윤창중이 얼마나 인간말종인지를 증언하는 적나라한 선정보도도 아닌 청와대의 대응방식이다. 지극히 단세포적이다. 게다가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이다.

사태가 청와대 대변인의 해외순방 도중 성추행 의혹이 아니라 군사안보와 관련된 국지전이었거나 급작스런 경제위기였다면 어찌됐을까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우선, 초기대응이 중요한데 정작 관련보고와 대책마련은 느려 터졌다.

둘째로, 사건에 대한 규정과 입장을 담은 첫 대국민 메시지가 중요한데 홍보수석이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국민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악 수준이었다.

또한, 사건 진행의 관리가 중요한데, 윤창중은 같이 죽자고 기자회견을 통해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리고 청와대는 자체 조사 내용을 흘리면서 아예 국민 앞에서 양측이 막장 멱살잡이 수준으로 사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홍보수석, 비서실장, 대통령이 줄줄이 사과했으면서도 아무런 공감대도 얻지 못한 채 사태악화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되면 청와대 수석들이 다 관둬야 마땅하다.

   
▲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방미기간 중 일어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동안 청와대 수석진들이 경청하고 있다.ⓒ뉴스1

상황관리능력은 개탄, 표적이동전술은 감탄?

예를 들어 이런 우왕좌왕하는 청와대의 태도가 국지전 도발에서 벌어졌다면 대한민국은 지난 4일 동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경제는 붕괴되고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정부의 총체적 지휘본부인 청와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무정부 상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청와대는 지금 대한민국 정부의 총괄지휘본부가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보좌에 여념이 없는 “내시부(內侍部)”로 전락해 있음이 드러났다. 야당이 청와대 지휘계통의 전면 물갈이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창중사태는 야당에게 꽃놀이패가 아니다. 자칫 이 상황을 어설프게 즐기려다가는 상심해 있는 민심의 역풍에 민주당이 먼저 날아갈 것이다. 국가망신이라는 전대미문 사건은 여야를 떠나 국민 모두의 실망과 좌절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윤창중이라는 수렁을 빨리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윤창중을 잊어야 한다. 그의 변명 하나하나를 놓고 시시콜콜 따지는 것, 속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허리인지 엉덩이인지를 관심가질 필요가 없다. 청와대의 인사시스템,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교훈을 남기고 대한민국 국가조직을 가다듬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엉덩이와 노팬티라는 단어만 남은 자리에 시스템을 점검할 공간은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어 책임론으로부터 빠져 나오려 하고 있다. 청와대의 윤창중 조사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박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비판의 표적이 순식간에 이동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런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라면 정말 무능한 것이고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면 멍청한 것이다. 당장 대통령에게 쏟아질 비난을 윤창중의 엽기행각으로 가릴 수 있더라도 그건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 더 극악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각오하고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셔야 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윤창중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뉴스1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적으로 일처리 해야

어려울 때일수록 일을 단순하고 원칙적으로 처리해야 맞다.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이 깨끗이 자신의 판단미숙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점검에 나서겠다고 말하면 야당이 더 할 말이 없다. 민주당이 집권당이었더라도 이런 인사사고는 터질 수 있고 정부요직의 인사가 온갖 사고를 일으킨 경험은 역대 정권에서도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일부언론이 윤창중 개인의 문제로 끌고 가기 위해 사건을 노팬티와 엉덩이로 도배질하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번 사건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사고는 계속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겨우 77일 지난 이 시점에 확고히 맺고 끊지 못하고 이런 사고가 두 번만 더 터지면 박근혜 정권은 최단기간에 레임덕을 만나는 정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민주당이 역풍을 조심하면서도 근본적 처방전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