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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하루/박용진의 오늘

빵집 아저씨가 된 '전노협 출범식 사수대원 강병택'

꼭 당직선거 때문만은 아니었다.

추천 수 부담은 있었지만 부대표 후보로의 추천을 받기 위해서만도 아니었다. 물론 전라남도 당원들의 지지는 중요했고, 조직도 없고 빽도 없는 나는 작은 인연 하나도 이번 선거과정에서 매우 중요했지만, 도대체 전노협 출범식 사수대를 맡았던 전라도 구수한 청년이 동네에서 빵을 구우며 진보정치를 한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맛 본 선거 출마자인 그의 속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강병택.

진보신당 전남도당 부위원장이며 나에게는 학생운동 시절 아련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소개는 하지 않겠지만, 그가 학생운동권들 거둬 먹이고 뒤 돌봐준 사람의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도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을만큼 궁색한 처지였지만... 그만큼 그는 넉넉하고 인정많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가 대학 2학년이 되는 겨울, 그가 다니던 성대 율전캠퍼스에서 전노협 출범식이 열렸다.

그는 그 역사적 순간에 경찰의 학내진입을 단 몇 초라도 늦추는 책임을 맡았다. 이른바, 역사적인 “전노협 출범 사수대”이다.

많이도 끌려가고 많이도 다쳤지만, 전노협 출범식은 성사되었고 그날의 최대 이슈였던 단병호 위원장의 무사탈출도 이뤄졌다. 그 후로 학생운동 한복판을 내달렸던 강병택 부위원장은 지금 순천 시내 한복판 아파트 밀집촌에서 벗젓이 빵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맞은편에 문을 연 <파리바게뜨>의 맹폭을 견뎌가며 자신의 이름을 넣은 간판을 앞세워 그만의 독특한 빵을 굽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상필 동지가 그랬다.

“서비스 빵을 좀 시원하게 쏘지...”

그러나 선거 결과가 단지 빵 몇 개 더 얹어 준다고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선거를 혼자 치르다시피했고, 진보신당의 고립무원 처지는 서울이나 순천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 하다.

 

우리 밀로 만든 빵을 고집하고, 동네 임차인 상가연합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진보정치를 뿌리내리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그에게 한자리 수 득표에 그친 지난 선거는 쓰라림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지역에서의 약진과 조직세의 확장, 진보신당의 정체는 그에게 "진보대통합 정당건설"이라는 명제의 제시가 불안함으로 다가서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에게 진보신당의 기본을 튼튼하게 하겠다는 것과 함께 진보정치세력이 역사의 흐름을 열어가야 하고 그것은 진보대통합이 맞다고 이야기 했다. 그것은 도로 민노당도 아니고, 패권의 지긋지긋한 기억과도 다른 새로운 길임을 이야기 했다.

 

 

 

 

저녁 먹자고 앞장서 오토바이를 몰던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나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20년 전 전노협 사수대를 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한 홍안의 젊은이가 이제는 머리숱도 많이 부족한 동네 빵집 아저씨가 되어 지금 내 눈앞에서 빨간 오토바이에 빨간 헬멧을 쓰고 순천이라는 척박한 동네에서 진보신당의 깃발이 되어 달리는구나...

 

진보대통합을 이뤄가야 하고 진보신당이 이것을 주도해야 하지만, 이런 이들을 외롭게 하지 말고, 이런 이들이 지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부대표의 어떤 권한과 능력이 전국에서 진보신당의 깃발이 되어 홀로 골목을 누비고 다닐 동지들의 외로움을 덜고 힘겨움을 나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2년 동안 단 한번 중앙당에서 조직 담당자들이 지역을 순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어디에서부터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가 고민했다.

중앙당이 이런 고민을 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하게 될 때 지역과 골목에서 우리의 깃발과 우리의 당원들이 "진보정치라는 맛있는 빵"을 구워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자, 오늘도 지역에서 숱한 어려움을 견뎌내며 민중의 빵을 굽고 있는 진보신당의 모든 활동가들에게 경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