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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생각과 글/박용진의 생각

문재인의 ‘위험한 무대’

문재인의 ‘위험한 무대’


1. 내가 문재인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가을쯤이었다. 진보신당 부대표 직을 사퇴하고 탈당하여 민주통합당 창당에 합류하기 전이었다. 부산의 횟집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만났던 그는 참 솔직했다. 참여정부의 과오에 대한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였고 잘못을 인정했다. 나로서는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집권 시절 잘못을 인정하고 뛰어넘을 자세가 되어 있다는 그의 말과 태도가 민주통합당 창당에 합류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민주통합당의 창당 직후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앞질렀다. 그러나 친노독점 공천논란으로 당 지지율이 꺽이기 시작했고, 박영선 당시 최고위원은 공천논란 갈등 끝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민주통합당은 ‘받아놓은 밥상을 걷어 찼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도부의 총사퇴로 총선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솔직함은 아무런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리더십 논란에 휩싸이며 끌려다니기만 하는 무기력한 문재인만 보였다.


2. 2012년 문재인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그의 수락연설은 인상 깊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을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의 연설은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가 치렀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은 모바일 투표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거듭했고, 이번 당권 경쟁에서도 여론조사 경선 룰 논란으로 후보끼리 말펀치를 주고 받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당내 이른바 비노 진영 인사들은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과정은 불투명하며, 결과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두 번의 전국적인 당내 경선을 치르는 동안 문재인 대표는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양보하는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3. 나는 총선 직전 당 대변인을 맡아 무려 9명의 당대표를 모시며 2년 6개월 동안 당이 롤러코스트를 타면서 정당정치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작년 7월 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직을 그만두면서 문재인 의원과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정치혁신의 내용에 대해 물었다. on-off 네트워크 정당을 이야기 했다. 구체성이 떨어져 보였다. 정치혁신의 핵심을 정당정치로 보는 것까지는 맞는데 강력한 정당, 뚜렷한 지향을 공유하는 당원이 갖는 어마어마한 힘을 모으는 일에 대해 아직 계획이 부족해 보였다. 친한 지인들과 측근들이 아닌 ‘정당’이라는 조직의 힘을 어떻게 생성 강화시켜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아쉬웠다.


문재인 후보가 제1야당의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이제 그는 그 아쉬운 부분을 말이나 단순한 계획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 주어야 하는 당 대표라는 ‘위험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기억에서 그가 보여주지 못한 리더십과 포용력, 정치혁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분명하게 말이다.

당선 뒤 그의 첫 일성은 “전면전”이라는 지지층을 의식한 단어이지만, 그의 첫 발걸음은 현충원 참배에서 그 동안 머뭇거렸던 박정희, 이승만 전직 대통령 묘소를 향했다. 정부여당과 날을 세우되, 중도보수층을 향한 보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한 것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 빚어질 당내외 논란에 어떻게 대처하고 정리하느냐에 그의 첫 무대인사에 대한 평가가 달려 있다.


돌이켜보면 2012년 현실정치에 들어와 이제 겨우 3년이 지난 문재인 대표에게 지난 3년은 엄청난 시련의 시기이자 거듭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정치를 시작하자마자 마냥 솔직한 것 만으로도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현실과 맞부딪혔고 짧은 시간 동안 제1야당의 거친 선거를 두 번이나 돌파해야 했다. 지난 3년 동안 문재인에게 국민적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고, 기회와 실패는 엎치락 뒤치락 뒤엉켜 있었다.

그가 천신만고 끝에 오른 당대표라는 무대는 그에게 위험한 기회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당 대표 낙선이라는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당의 혁신 실패’라는 두 번째 죽을 고비에 서 있다. 그가 오른 위험한 무대에서는 이제 매사가 그에게 끝이 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이젠 사즉생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 죽을 각오 정도가 아니라 살겠다는 생각을 아예 버리지 않으면 그는 그가 이야기한 세 번의 죽을 고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의구심과 위험은 모두 당 안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 대표가 된 이 순간부터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자세로 가야 한다. 정치인 문재인이 여기까지 오는데 타고 왔던 배가 ‘친노’이고, 짊어지고 온 솥단지가 ‘계파’였다면 그것부터 버리고 깨트려야 한다. 그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깨트려야 할 것을 부수지 못한다면 그는 그 배를 끌고 솥단지를 짊어지고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 밑에서 주저 앉고 말 것이다.


문재인 대표가 위험한 무대에서 보여줘야 하는 리더십과 포용력, 정치혁신의 능력은 사실은 모두 하나의 문제로 엮어 있고 답도 명확하게 하나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문재인 대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용진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