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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박용진/언론보도

[프레시안] 진보의 실력파들, 그들은 왜 민주당으로 갔나?

[분석] 인재 '유출'이냐 '영입'이냐 …손놓고 있는 진보


민주당 대권주자 중 하나인 손학규 전 대표가 내놓은 "저녁이 있는 삶"은 탁월한 슬로건이다. 아직 일반 대중의 입길에는 오르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언론과 정치권의 평가는 상당히 좋다.

손 전 대표는 구체적 공약으로는 2020년까지 70% 이상의 고용률 달성,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 보장, 비정규직을 위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준수, 종업원지주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진보적 성장'을 내놓은 것은 문재인 상임고문도 마찬가지다. 김두관 지사나 안철수 서울대융합기술대학원장도 비슷한 흐름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전 대표 쪽의 피부에 와닿는 짜임새가 돋보인다.

손 전 대표의 이같은 컨텐츠 '배후'로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 심상정 의원 전 보좌관을 지낸 손낙구 현 최원식 의원실 보좌관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정통 운동권' 출신의 손에서 나온 그림인 것이다.

현재 민주당에는 손 보좌관 외에도 박용진 대변인, 길기수 부대변인, 문명학 중앙당 조직국장, 송태경 보좌관(최재천 의원실), 최병천 보좌관(민병두 의원실) 등의 진보정당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 운동권이 '새 피'로 수혈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해찬 대표 도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된 '평민련' 출신이다. 하지만 현재의 흐름이나 면면은 과거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손낙구, 송태경, 최병천…박용진, 길기수, 문명학

▲ 손학규 전 대표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의 '배후'로 지목되는 손낙구 보좌관ⓒ프레시안(김봉규)
경희대 출신으로 반월공단에서 직접 노동운동을 했던 손낙구 보좌관은 민주노총 교선실장, 민주노총 대변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등을 역임한 '정통파'다.

<부동산 계급사회>(2008)와 <대한민국 정치 사회지도>(2010) 등의 역저를 내놓은 그가 손 전 대표 측에 합류했을 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조용히 최재천 의원실에 합류한 송태경 보좌관도 '실력파'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진보진영 내에서 '자본론 박사'로 통했던 송 보좌관은 상가임대차 보호, 파산 보호, 사채 이자율 규제 등 지금은 여야 정치권의 상식이된 경제민주화 사안들을 정치권에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민병두 의원실에 합류한 최병천 보좌관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시절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해온 인물로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가 '주류'로 잡기 훨씬 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통해 복지국가론을 설파해온 인물이다.

이들이 '정책통'에 가깝다면 박용진 대변인, 길기수 부대변인, 문명학 조직국장은 정무 쪽이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박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대표적 젊은 정치인이었다. 진보신당 시절 '빅텐트론'에 공감했던 박 대변인은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를 꾸려 민주당 통합에 합류했다.

춘천 출신의 길기수 부대변인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장, 진보신당 강원도당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문명학 조직국장은 '책사'다. 지난 2002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김석준 후보의 득표율을 16.9%까지 끌어올린 주역인 문 국장은 그해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의 저작권자기도 하다. 주로 전략파트에 몸 담았던 문 국장은 진보진영 내에서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꼽혔었다.

범PD·정책통 다수, 과거 '범NL수혈'과는 궤가 달라

과거 민주당 계열 정당에 합류한 '운동권 출신'들은 주로 총학생회장 등을 지낸 명망가거나 범 'NL계열'이었다. 비판적 지지-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연성-정권교체 우선론의 맥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에 합류한 이들은 '범PD계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이후 '좌클릭한 민주당'에 몸을 담은 것이고 하나같이 진보정당에 십여 년 가까이 몸을 담았던 인사들이다.

민주노동당의 창당 주역이라할 만한 인사들도 다수다.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진 적도 없는 이석기 의원 같은 인물과도 결이 다르다.
이런 까닭에 이들의 민주당 행을 보는 시각은 상당히 복잡하다. 진보정당에 나름의 헌신을 바쳤던 이들에게 "변절했다"고 질타하는 목소리는 적다. "(상황이) 안타깝다"는 말은 많이 들린다.

통합진보당의 한 인사는 "하나같이 탁월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우리로선 안타깝다"면서도 "사실 자주파(구 당권파)와 이런 문제도 예견됐었기도 하고, 참여당과는 합치는데 민주당하고는 왜 안 되냐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박용진 '뒷배'된 박지원·우상호… 최재천의 송태경 영입 스토리

▲ 박용진 대변인, 민주당 대변인실의 고참당직자도 "박용진 일 잘하더라"고 평가했다ⓒ프레시안(최형락)
물론 이들이 거대정당인 민주당에 합류한 것은 '현실론'이 가장 크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은, 그 진정성은 차치하더라도, 진보적 의견을 수렴하기에 별로 거리낌이 없는 조직이다. 또 영입 인사들에 대한 대우나 활용도 괜찮다.

지난 6.9 임시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와 가까운 김현 의원과 김한길 최고위원과 가까운 정성호 의원을 대변인에 선임하면서 박용진 대변인을 유임시켰다.

당내 기반이 미약한 박 대변인의 유임을 위해 박지원 원내대표, 우상호 최고위원이 힘을 썼다는 후문이다. 장수 대변인 출신인 이들이 자신들의 맥을 이을 '빅 마우스'로 박 대변인을 지목한 것.

민생연대 사무처장으로 불법대부업 피해자에 대한 상담 및 무료법률지원 활동에 진력해온 송태경 보좌관이 최재천 의원실에 합류한 사연도 마찬가지다.

송 보좌관은 진보신당이나 통합진보당에서 활동을 계속하길 원했지만 여러 이유로 여의치 않았고 한다. 이후 송 보좌관의 활동은 최장집 교수의 <경향신문> 현장 칼럼에 소개되기도 했다.

송 보좌관은 최근 <레디앙>에 기고한 '진보정당운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는 글에서 "최재천 의원이 최장집 교수님의 칼럼을 보고 제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송 보좌관은 "자신의 상임위 활동과는 관계없이, 민생연대에서 제가 하는 일을 의원실에서 하면서 민생고(民生苦) 해결에 필요한 제도개선 활동을 해달라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민생현안들로 일을 확대 해주고 약간의 시간만 빼서 자신의 의회활동을 위해 경제정책 부분을 보좌해달라는…"라고 최 의원의 제안 내용을 밝혔다.

통합진보당 상황 보니, 민주당 '러시'이어질 듯

송 보좌관은 "진보진영의 인사들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던 제안, 심지어 지금은 제 활동에 우호적인 인사들 대다수조차 '이렇게 바쁜 선거 시기에', '인력이나 예산도 취약한데' 등등의 논리로 반대하거나 뒷전에 밀어두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소극적이거나 했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현재 통합진보당은 '이석기 김재연 거취' '불법 경선 논쟁' '북한에 대한 입장' '애국가 논쟁'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고 당 대표 경선에 돌입한 상황이다.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울산연합 VS 인천연합+진보신당탈당파+참여계의 단순명료한 구도다.

한 진보 성향의 정치학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이제 혹시 한국 정치가 양당 구도로 가는 게 아닌가도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민주당이 왼쪽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고, 통합진보당은 저 모양이니 말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보정당 출신 '인재'들의 민주당 행이 이어질 기반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윤태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