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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박용진/언론보도

[미디어오늘] “사랑하지만 결혼은 10년 뒤에? 그런 정치는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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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결혼은 10년 뒤에? 그런 정치는 무책임”
[연쇄 인터뷰] ‘정치냉소’를 넘어 정치에서 희망을…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
[0호] 2012년 04월 22일 (일) 박새미·류정민 기자  psm@mediatoday.co.kr

19대 총선이 새누리당 원내 과반의석 달성으로 끝이 났다. 전문가와 언론 분석과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야권 지지층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정치에 대한 냉소적 시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정치무관심은 ‘그들만의 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라는 얘기다. 19대 총선 출마자 가운데 주목받는 인물과 주목해야 할 인물, 의미 있는 도전을 한 인물들에 대한 ‘연쇄 인터뷰’를 통해 한국정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려본다. / 편집자 주

진보신당 부대표를 지낸 정치인 박용진은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변인이다. 그는 지난해 9월 탈당계를 제출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진보정치를 꿈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현실화시켜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소신이 담긴 선택이다.

그가 20년간 몸담았던 진보진영 내에서는 ‘자신의 입신을 위해 변절했다’, ‘권력을 찾아간 사람’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그런 비판들을 짊어지고 그냥 자신의 길을 ‘GO’ 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그런 비판을 한 사람들의 입장과 주장을 존중하고 그들의 길 역시 응원한다고 밝혔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 ⓒ허완 기자
 

19대 총선이 여의도를 휩쓸고 지나간 이후,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4·11 총선 날 개표 결과에 윤곽이 잡힐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자책골’이라는 느낌. (예상을 뒤엎고 민주통합당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은) 선수(후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응원하는 관중들(지지층) 진짜 힘 빼는 거다. 응원단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어놨다는 느낌이어서 그게 너무 아프더라. ‘나만 좀 아프고 말자’라는 생각으로 부족한 공격자의 역할을 김유정 대변인과 함께 하며 이리저리 고군분투했는데, 그래도 안 되는구나. 나는 원래 정치인 역할 중 가장 큰 게 ‘치어리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거꾸로 됐던 거다. 보통 줄다리기를 할 때 건장한 성인 남자 40명과 60명의 승부는 다들 뻔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마음을 모아서 ‘영차영차’를 잘하면 40명이 60명을 이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사불란함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사회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꿈, 희망 이런 것들을 분출시켜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찬물을 끼얹었으니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패인으로 민주통합당 내 ‘486’, ‘친노’의 문제라는 주장들이 나왔는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얘기라고 봐야 하나.

“실제 의사결정 과정과 발표 사이에서, 의사 결정 최종 결과가 어땠느냐 그걸로 봐야한다. 나는 사실 486이 어디까지가 486인지 모르겠다. 아직 이 당에서 계파 파악도 안 되고. ‘누가 다 해 먹었다더라’는 얘기는 있는데 그게 실체가 있는 얘기인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이전에 있었던 진보정당과 비교해볼 때, 진보정당엔 꿈이 있다. 허황된 꿈일지언정 그 꿈 때문에 모두가 참는다. 3일 굶은 사람이 음식을 앞에 두고 참는다면, 이 음식 말고 다른 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짐승은 그렇지 못하고 그냥 먹잖나. 나는 꿈이 있는 정당이라면, 밥상이 차려지고 잘 될 것 같은 상황이어도 (절제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정당의 꿈이라고 보는데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어쨌거나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한 끼를 더 굶는 거지. 대신 다른 음식을 챙기는 거지. 그런 측면에서 아깝다.”

-야전사령관식 리더십이 필요했다고 보는 건가?

“야당인데 당권, 대권을 분리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뭘 가진 게 있다고 당권, 대권을 분리하나. 지금 당권과 대권의 분리가 ‘정당 개혁’과 ‘정치 민주화’ 측면으로 제기됐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정당·정치 개혁의 핵심이 아니라고 확인된 것 아닌가? 그러면 일사불란하게 만드는 책임구조가 필요한 거다. ‘2층 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나는 회의적이다. 대통령 후보가 뽑히면 그 사람이 당을 책임지고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 누가 혼자 다 먹겠다는 거냐!’라고 얘기하는 순간, (정당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본다) 여기가 상인연합인가? 여긴 정치연합이다. 나는 (상인연합처럼)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본다. 정치 비전을 갖고 꿈을 갖고 책임질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

-강북을 경선에서 떨어졌는데. 민주통합당의 통합과정에서 한 역할을 볼 때 이번에 공천을 받아 당선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을 못 받아 도전도 못해본 거 아닌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었나.

“예상 못했다. 그런데 후보 공천이 경선으로 결정된 순간 ‘엎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학영(기자 주: 경기 군포시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시민사회계 인사라는 상징적 의미에서 전략공천된 인물) 후보나 나나 이 당에서는 정치 초짜인 셈이다. 그런데 이학영 후보는 전략공천을 주고 박용진은 전략공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기준이 뭘까 궁금했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답답했다. (민주통합당이 강북을 지역을 경선 지역으로 확정할 당시) 현역 지역구 의원인 최규식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다. (기자 주: 강북을 후보 결정을 위한 민주통합당내 경선에서 박용진 후보와 겨룬 유대운 후보는 지역 기반과 조직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경선을 시켜서) 사람을 사지(死地)로 던질까. 사람들은 통합과정을 통합하는 척으로 생각해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정치를 위해 오랫동안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고, 진보정치 내에서는 지역기반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사람이 민주통합당으로 옮기는 도전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터닝 포인트를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뭐였나.

“차츰차츰 쌓인 건데,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이) 분당하면서부터 굉장히 괴로웠다. 이 구조가 가능할까. 다들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다들 얘기를 했다. 우리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그런데 (의회의 다른 당 의원들이) 그렇게 해주나. 나는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들었다. 이미 국민들 가운데 진보정당을 지지해주는 세력이 10프로가 있었다. 이것을 기반으로 과감하게 실현시키는 게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만약 진보정치의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이 있다면, 노회찬이나 심상정은 A+를 받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아마 C나 받을까. 그런데 국민들이 볼 때, 국민들의 삶에 누가 더 진보 정치인일까. 박원순이다. 만약 노동문제 시험을 친다면 박원순 시장은 그리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진보정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되고 다음 날 보수와 진보의 대립문제였던 무상급식에 필요한 재원 810여개 인가서에 사인을 해 통과시켜버렸다. 그걸로 모든 여론을 잠재운 것이다. 온갖 허황된 얘기를 싹 끊어내 버리고 그냥 ‘이건 국민의 권리다’라고 보여준 거다. 진보정치가 그토록 하고픈 게 노동과 복지인데, 이 양반은 한 방에 해결해 버린 거다. 그리고 서울시에 있는 비정규 계약직들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시켜버렸다.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민생의 정치를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한데, 거기에 집권이 필요하다. 나는 실현되지 못하는 진보정치는, 마치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 ‘10년 뒤에 결혼할지 모른다,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집권이 안 되더라도 진보적인의 방향으로 견인하는 역할에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진보정당이 ‘등대정당’의 역할을 하는 것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 않나.

“나는 등대 정당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진보정당을 처음 만들었을 때 집권의 꿈을 갖고 시작했다. 등대정당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은 그렇게 얘기하시는 거고 그분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 당(민주노동당)을 만들 때도 계량주의고 의회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계량주의, 의회주의 안 하고 어떻게 집권해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등대정당론을 우습게 본 적 없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거다. 진보신당이 등대정당을 하겠다고 얘기한다면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신당이 이번에 법적 해산을 하게 된 것에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등대정당을 생각하고 있던 분들이라면 법적 해산과 상관없이 자기 몫을 할 것이라고 본다.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응원이나 조력을 해줄 생각이 있다.”

-진보정치의 토양을 가꾸고자 했던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알고 평가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에 합류한 것에 대해 진보정치 진영 내부에서는 안 좋은 비판적 평가가 있는데.

“비판이 두렵나? 나를 욕하는 사람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는 실현시키지 못할까봐 두려울 뿐이다. 내가 전환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거울로 삼았던 것은 97년의 상황도 있다. 당시 다들 비정당적 정치주의, 비정당적 정치노선이었다. 사회투쟁, 전민항쟁, 민중항쟁 이런 식이었다고. 정당은 아주 하위적 개념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전면에 들고 나오니까 당시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상하게 봤었다. 비판을 했고.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 정도의 전환을 안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얘기했고 2, 3년 뒤에 다 결합했다. 지금의 정치·선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진보정당은 좋은 소리만 하는 거고 그 좋은 소리를 자유주의 세력들이 실현시킬 것이다. ‘미흡하게’. 그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우리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원조론’은 필요 없다. ‘무상급식, 박원순 당신이 먼저 시작한 거 아니잖아. 2002년에 민주노동당이 먼저 얘기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에 나는 비판적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당장 민생 정치를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2002년에 우리가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그걸 실현시키지 못했을 때 당시 우리를 지지했던 엄마들의 그 애들은 지금 군대 가버렸다. 나는 내가 주장하는 진보정치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게 두렵지,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두렵지 않다.”

-그래도 사람이니까 진정성을 담아서 그동안 청춘을 바쳤는데 그쪽 진영 일부에서 배신이라고 얘기하는 것에 마음의 상처는 있을 텐데.

“진보신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게 지난해 9월인데, 이혼을 한 적은 없지만 이혼서류에 도장 찍은 것처럼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내가 내 의견을 숨기거나 속여서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의견을 계속 내놨었다. 토론하자고. 근데 토론을 안 한 것이다. 3개의 노선이 있었다. 박용진이 얘기한 ‘대통합론’이 있었고 ‘소통합론’, ‘독자노선’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잘못 왔기 때문에 이렇게 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이만큼 길이 열린 거다. 진보정치 10년을 잘 버텼으니까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손 내밀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열었다. 그리고 다음 스텝을 가자’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이해·동의를 못하고 모두가 남겠다고 했다. 소통합 노선은 실리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명분에서는 양면에서 공격받을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와 대한민국에 노동자, 진보정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꿈만 같은 일들이 현실의 식탁 위에 올라오고 있다’는 것에서 나는 지난 진보정치 20년의 길을 돌아볼 때 행복하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 적어도 우리가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주연이 되고 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봤는데 나는 그걸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친구 중에 ‘김종철’ 이런 친구 좋게 생각한다. 종철이 같은 친구가 기회를 갖지 못하고, 김종철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백기완으로 있는 게 과연 국민들을 위해 좋은 일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정치에서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한국정치의 실제 변화 주체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사실 민주통합당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세력연합이라는 이미지 외에는 이 당이 어떤 길을 가려 하는지가 잘 보이지 않더라.

“당의 강령 전문에 보면 다 있다. 강령에 있긴 한데 그것이 글씨 속에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현실 속에 살아 움직이게 하느냐가 문제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하는 건데,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비례대표에서 몇 명 보긴 했지.”

-정치인 박용진 입장에서 이번에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다시 4년 기다려야 하는 건가.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하는 건가.

 “해야 한다. 나는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것을 정치면허증으로 본다. 대변인이 인지도는 높을 수 있지만, 대변인이 얘기하는 것에 힘이 실리는 것은 아니다. 결정된 것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정치면허증’이 나한테는 간절히 필요하다. 차를 운전하고 갈 때 다음 목적지가 어딘지 분명히 얘기하고 사람들을 싣고 가고 싶다. 그것은 꼭 4년 뒤가 아니라 예를 들면 보궐선거라든가 모든 가능성은 다 열어놔야 한다고 본다. 지금 나는 정치적 하숙생이다. 나는 앞으로 정치인생을 만 60살까지 20년을 설정한 상태다. 그 20년을 돌아봤을 때 ‘박용진의 선택으로 대한민국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괜찮은 사람이 많더라. 그런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의미 있는 법안을 만들어내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선거정국에서 목표가 있다면.

 “민주통합당은 절대 이게 완성 상태가 아니라고 본다. 강령 전문에 있는 이야기를, ‘노동존중·보편 복지·한반도 평화’라고 하는 3대 기조를 실현시켜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행히 대선이라는 게 있고 그 공간을 통해 실현시켜나가려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그 사람들이 뭉치고 집권을 이뤄내는 주역이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정권 교체가 핵심이다. 정권교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다. 그 역할이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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