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의 하루/정치아카데미

[강연] 올로프 팔메, 합의주의를 넘어선 지도자

Parkyongjin 2013. 3. 12. 16:06


“올로프 팔메, 합의주의를 넘어선 지도자”

 

강사 : 하수정(“올로프 팔메” 저자. 한겨레경제연구소)

시간 : 2013년 3월 19일(화) 오후 7시

장소 : 국회의원회관(신관) 2층 세미나실

교재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폴리테이아. 저자 하수정)

 

 

■ 강사소개

강사 하수정은 포항 한동대학교에서 미국법을 전공한 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한겨레신문사 20주년 창간 기념사업으로 매그넘 작가 20명이 대한민국을 촬영해 사진집을 내고 전시를 했던 매그넘 프로젝트를 기획, 담당했다. 프로젝트를 마친 후 유학길에 올랐다.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 석사과정을 마쳤다. 재학 중에 학교 대표로 세계학생환경총회에 참가했고, 지속 가능한 웁살라 대학교 만들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한겨레』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로 복직해 지속 가능 발전과 관련한 몇 가지 연구에 참여했다. 앙리 루소가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살고 그 밖의 시간에는 관심 가는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하고 기고하고 강연도 한다. 주요 관심 분야는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유, 북유럽, ESD, 예술, 철학 등이다.

 

■ 강연내용

- 복지국가 스웨덴에 대한 동경은 이제 그만! 그런 나라를 만들고 투쟁해온 정치세력과 정치인에 대해 들여다 보고 민주당과 한국사회의 정치세력이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지 짚어보자!

- 스웨덴 사민당의 정치인들에 대한 소개와 스웨덴 정치사에서의 합의주의에 대한 소개

- 올로프 팔메가 스웨덴의 합의주의 전통을 넘어선 정치인으로 겪어야 했던 어려움

- 그와 성격과 정치역정은 비슷한데, 시장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달랐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 두 정치인의 공통점과 차이점. 실패와 성공의 지점을 토론해 보자.

 

 

■ 올로프 팔메는 누구?

올로프 팔메는 스웨덴의 총리이다. 팔메는 스웨덴 사민당의 대표로 1969~76년, 1982~86년 동안 집권했다. 그의 집권기간 동안 스웨덴 사민당과 전국노동조합연맹(LO)의 강고한 결합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구가되던 복지국가의 동력에 균열이 생긴 동시에, 스웨덴 복지 제도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 기점으로 평가받는다. 오랜 산고 끝에 도입된 임금노동자 기금이 이에 반대하는 기업인의 거센 저항 끝에 결국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면서, 사민당과 LO의 관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한편, 이 시기 스웨덴의 지니계수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부모 육아휴직 제도가 개혁되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으며, 보육 시설과 교육 기회가 확충되는 등 양성평등 지표는 높아졌다.

 

2012년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의 여론조사 연구 기관인 솜(SOM)이 스웨덴 국민을 대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를 했다. 1위가 넬슨 만델라(8.9%), 2위가 어머니(8.5%)였고, 3위가 바로 올로프 팔메(7.9%)였다.

 

올로프 팔메는 사민당 소속으로 43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어(1969년~1976년, 1982년~1986년), 스웨덴 복지 제도를 근대화 시켰으며, 특히 외교적인 부분에서 스웨덴의 역량을 크게 향상시킨 인물이다. 올로프 팔메는 거침없는 성격과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사람들과의 토론을 즐겼고, 연설에 열정적이었지만 그런만큼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한몸에 받았다.

 

책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을 만큼, '올로프 팔메'의 죽음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1986년 2월 28일, 올로프 팔메는 피살되어 생을 마감하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팔메는 소극적인 중립국 노선이 아닌 적극적인 중립국 노선으로 외교활동에 눈부신 업적을 남겼는데,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쟁 반대에 앞장섰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정책에 대해 국제적인 반대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올로프 팔메는 결코 중간자적 위치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한 적이 없었다. 호불호가 뚜렷했던 만큼,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스웨덴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었다. 그래서 스웨덴 보수당의 칼 빌트는 1987년에 "지난 20년간 스웨덴 정치에는 친팔메와 반팔메 그리고 팔메, 이렇게만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