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지국가

[폴리인터뷰]박용진② “민주통합, ‘박용진’ 선택이 변화 신호” “당 공심위 구성 보고 ‘충격 받았다’…19대 총선 ‘강북을’ 당선 자신” 최신형 기자 (tlsgud80@polinews.co.kr) 2012-02-29 01:25:38 박용진 민주통합당 강북을 예비후보@폴리뉴스 이은재 기자 민주통합당의 새로운 가치와 세력, 진보의 재구성 담론 등에 대한 인터뷰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4.11 총선 관련 인터뷰로 넘어갔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강북을 예비후보는 총선 지역구 선정과 관련,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2달 만에 치른 총선에서 13.3%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진보신당 창당 한 달 만에 도전해서 12% 조금 못 미쳤다. (강북을)지역에서는 제법 탄탄하다”면서 “진보정치세력 중 지난 10년 동안 서울지역에서 (득표율)10% 이상 유.. 더보기
[폴리인터뷰]박용진① “도로 민주당 논란? ‘박용진’ 역할 있다” “민주통합 창당 여기서 일단락 아냐”…“박원순, 권영길·노회찬·심상정 보다 진보적” 최신형 기자 (tlsgud80@polinews.co.kr) 2012-02-29 00:19:41 박용진 민주통합당 강북을 예비후보@폴리뉴스 이은재 기자작은 반란의 주인공을 만났다. 민주통합당 1.15 전당대회에 앞서 열린 예비경선(컷오프)에서 세간의 예상의 깨고 구체제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 ‘박용진’, 그가 오는 4.11 총선 ‘강북을’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도발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박 예비후보는 보편적 복지를 말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주장하는 민주통합당 등 기성 정치권을 향해 “정치적 정신분열 상태”라며 “한미 FTA와 복지는 양립 불가”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는 ‘박용진 역할론.. 더보기
[프레시안]"지금은 자장면 위 완두콩…일산서 '혁명' 벌어질 것" [인터뷰] 민주당 예비경선 파란의 주역 박용진 후보 기사입력 2011-12-28 오전 8:10:29 지난 26일, 민주통합당 예비경선에서는 작은 '파란'이 일어났다. 민주당 출신 이종걸, 신기남, 우제창 등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나이 마흔 살, 진보정당 출신 박용진 후보가 9명의 당대표 선거 본선 후보에 포함된 것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고개를 더 기울이게 된다. 민주노동당 대변인, 진보신당 부대표. 진보신당 부대표 시절, 목 놓아 주장했던 두 진보정당의 통합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그는 당을 뛰쳐 나왔다. 그리고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를 만났고, '혁신과 통합'에 합류했다. 야권 통합에 힘을 보탰고 민주통합당 지도부에 도전했다. 총 15명의 후보 중 9명만 살아남은 이번 경선 결과와 박 후보의 '안.. 더보기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는 박용진을 응원해주세요 더보기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 출범식 더보기
2011년 5월 12일 복지국가만들기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더보기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모든 것을 버렸다.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모든 것을 버렸다. - 내가 배신자 소리 각오하고 20년 진보정당독자노선과 결별하는 이유 진보신당 탈당계를 김은주 직무대행 앞으로 보냈다. 92년 1월, 노점상 출신의 무소속 민중후보 소순관을 쫓아 다니며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그해 겨울 무소속 민중후보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시작한 20년의 진보정치의 여정.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주술같은 절규의 구호에 끌려 보수야당과 구별되는 노동자-농민-도시서민의 진정한 정치적 친위부대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세 번의 체포와 구속, 2년 5개월의 징역살이도 기쁘게 견뎌왔던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과 나는 결별한다.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나오는 느낌이 무언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더 .. 더보기
장인어른은 감옥 간 사위가 미국으로 유학간 줄 아셨는데... 박카스를 사랑하셨던 장인어른, 구속된 사위 미국유학간 줄 알고 나는 2001년 3월 31일 세 번째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대우자동차에 몰아닥친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강북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이었던 나는 지금의 최고위원 격인 민주노동당 전국집행위원이었다. 서울권역 선출과정에서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 출신의 노동운동 대부 정윤광 민주노총 정치위원장과 오랜 진보정치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진보정치연합 출신 이재영 동지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꺽고 당선됐기 때문에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던 때였다. 김대중 정권 퇴진을 내건 첫 민중대회였다. 외자유치를 위해 정리해고 제도를 사회적으로 관철시켜야 했던 정권으로서는 몹시 민감하게 반응했던 집회였다... 더보기
진보신당 부대표직을 사퇴합니다. 진보신당 부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 지난 6월 26일 진보신당 임시당대회를 마치고 난 다음날 월요일 아침, 저는 진보신당 부대표의 무겁지만 영광스러웠던 책임을 내려 놓았습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여부를 놓고 내홍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양당간의 통합이 한 점 희망도 없는 국민들에게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양당의 통합이 그런 새로운 희망을 풀무질하기 보다는 공학적인 접근과 과거복원의 시각에 머물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진보신당의 부대표로서, 진보대통합이 야권전체를 진보적으로 재편하는 대통합의 시작이자,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대한 국민 대행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장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6.26 당대회는 양당통.. 더보기
진보정치세력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앞장설 것!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 ‘복지국가 위한 제2의 6월항쟁 호소’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강북을 위원장)는 6월항쟁 기념일을 맞아 6월 9일 오전 10시에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 2012인 선언대회’에 참석 하였다. 이 날 대회는 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나아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있어서 복지국가 건설이야 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민주화로 가는 길임을 천명하는 자리였다. 박용진 부대표는 이 날 정치연설을 통해 “명동성당에서 수많은 기자회견과 농성이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야말로 87년 6월 항쟁이후 다시한번 대한민국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선언의 자리”라고 운을 뗐다. 박 부대표는 “87년 6월 항쟁은 ‘민주국가’를 만들자는 외침으로, 오늘의 자리는.. 더보기